미친놈과 천재, 그 사이 어딘가쯤 위치한 프랭크와 열등감을 이기지 못한 돈, 그리고 찌질한 존의 이야기.


간만의 여유를 집에서 영화를 보며 보냈습니다. 최신영화가 아닌, 예전부터 꼭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했던 `프랭크`를 보았죠. 비긴어게인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프랭크. 사실 비긴어게인이 애덤의 목소리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프랭크 역시 비긴어게인에 못지않은 작품성을 갖추었습니다. 비긴어게인이 밝은 느낌의 영화라면 프랭크는 조금 더 어두운, 현실에 더 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죠.


동화에서 현실로, 현실은 늘 아프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직장인 존이 우연한 계기로 프랭크와 친구들이 있는 밴드에 합류해, 프랭크의 천재성을 따라가는 이야기죠. 거기에는 SNS와 각종 인간군상의 모습이 담기지만, 영화 자체는 그리 무겁지 않습니다. 조금 쓸쓸한 분위기에 B급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평범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다 보니, 그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유쾌하기도 합니다.




아일랜드에서 프랭크의 천재성을 닮고 싶은 존과 그런 그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는 돈, 그리고 프랭크의 맹신자인 클라라까지. 그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은 영화중반부로 넘어가며 하나의 색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환상에서 머물기를 택한 돈 때문에 그 색은 오래가지 못하죠. 록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한 여정을 다룬 후반부에서 갈등이 고조되고 가면이 박살 나며 현실에 맨몸으로 남겨진 프랭크와 그의 친구들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길이 음악을 하려는 길이 아닌, SNS가 만들어낸 신기루였으며, 신기루의 끝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존 자신이 쫓던 것이 신기루였다는 모습은 영화 마지막 다시 밴드가 뭉치는 모습에서도 보이죠. 울며 노래를 부르는 프랭크, 그리고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클라라 하지만 그 자리에 존은 없습니다. 특별한 밴드에 평범함을 전염시키며 자신이 특별해지길 바랐던 존. 어쩌면 우리 모습과도 같을지 모릅니다. 나보다 특별한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어쩌면 그들 역시 나처럼 평범해지길 바라는 모습 말이죠.


특별함과 평범함. 


제가 느낀 프랭크는 딱 한 문장입니다. "특별한 미친놈과 평범한 찌질이는 결코 같을 수 없다." 프랭크에 온갖 프레임을 씌워 자신만의 상상으로 특별함을 만들어내는 존. 그 환상이 깨지고 평범한 프랭크를 마주했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영화 마지막 보여주던 그 뒷모습은 무얼 말하는 걸까요.

영화, 아니 에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보았습니다. 개봉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보아 정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 내면의 감정을 캐릭터화해, 우리가 겪는 감정충돌적인 모습을 그들의 모습으로 그려냈습니다. 주인공 라일라의 감정들이 겪는 좌충우돌과 슬픔이의 비중은 우리에게 감정을 숨기고 마냥 즐거운 척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란 것을 보여줍니다.




슬픔이와 기쁨이, 그 둘에게서 보이던 나의 모습.


인생의 희로애락이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 있어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이 모두 함께 있다는 소리죠. 마냥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우린 비인간적이라 말합니다. 부처가 아닌 사람이기에 화를 내고, 예수가 아닌 인간이기에 이기적일 수 있으며, 동물이 아닌 사람이기에 함께 기뻐할 수 있죠. 사실 전 직장을 다니며, 그리고 그만둔 후. 혼자서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부담될까봐 늘 괜찮은 척하며 지냈죠. 슈퍼맨이 아닌데 슈퍼맨처럼. 전 직장을 그만둘 때 누군가 저에게 그랬습니다. 

"너도 사람이고 실수할 수 있다. 왜 너만 실수하면 안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널 슈퍼맨으로 만든 거 같아 미안하다."고 말이죠. 저도 사람이고 감정을 느끼는 인간입니다. 매드클라운의 가사처럼 때리면 아프고, 간지럽히면 웃죠. 슬플 땐 웁니다. 하지만 그땐 그 감정들을 모두 숨겼습니다. 강압적으로 기쁜 생각만 하려 하고,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고, 그 뒤 제게 남은 것은 해피바이러스가 아닌, 너무나 큰 공허함이었습니다. 결국, 감정의 골이 깊어질수록 악영향이 나왔고, 결코 좋지 못한 방법으로 전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지금 전 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초반 기쁨이의 행동은 슬픔이를 배제하는, 라일라에게 늘 즐거움만 주려 하는 모습입니다. 슬픔이의 실수로 구슬의 색이 바뀌고, 섬들이 무너지면서 분명 관객들도 슬픔이를 욕했겠지요. 하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슬픈 기억이었고 억지로 즐거운 기억을 만들다 보니, 표출되지 못한 슬픔이 모여 일으킨 사고라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기쁨이와 슬픔이가 없을 때 라일라에게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결국 모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텅 빈 인간이 되어버리죠. 인형이 된 라일라에게 감정을 되찾아준 슬픔이와 기쁨이. 라일라가 제일 먼저 찾은 감정은 슬픔이었습니다. 슬픔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마음껏 울었을 때, 다시 찾아온 것은 기쁨이 아닌 행복이었죠.


감정노동자와 감정을 숨기는 어른들.


우리 모두 어쩌면 몸만 큰 어린이입니다. 현실에 부딪혀 참고, 견디며, 다들 힘들어하니 힘들다는 소리 한번 제대로 못내는, 모든 것은 나의 노력부족으로만 몰고 가는 그런 어린이일 수 있습니다. 어릴 적 꿈은 기억청소부들이 지워버리고, 어릴 적 상상의 친구는 빙봉처럼 이별했죠. 구멍 난 통장에 월급만 들이붓는, 아니, 월급을 붓기 위해 직장을 찾아다니는 많은 몸만 큰 어린이입니다.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괜찮은 척, 긍정적인 척. 힘들다 말하면 약한 사람으로, 화를 내면 부도덕한 사람으로 내모는 그런 사회의 시선이 우리를 슈퍼맨으로 만들고 있는지 모릅니다. 슈퍼맨이 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그 공허함. 우리가 만약 우리의 감정에 솔직해지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 역시 행복일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본 모든 어른에게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잠깐이라도 어린이로 돌아가 보자고, 우리의 감정에 솔직해져 보자고. 그럼 내일은 조금 아주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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