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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준비 그리고 고마움


날을 잡은 지 이제 두 달여 정도 남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절대로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겠다. 마음먹었는데, 어쩌다 보니 제가 예복을 맞추고 식장을 돌아다니고 있네요. 누군가 제 기분을 물어보면 잠깐 머뭇거린 채로 대답하게 됩니다. 머뭇거리지만 절대 결혼이 싫다는 게 아닙니다. 친구에게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하다 보니 머뭇거리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제 머릿속에는 온갖 미안함들이 섞여버리기 일쑤입니다.


누군가를 만나, 함께 길을 걷고 서로에게 기대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설레고 좋습니다. 하지만 준비가 덜 된 나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하는 배우자에게 미안하고, 그런 자식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부모님께 죄송하고, 힘들어도 말 못하는 동생의 속사정 이해하고 선뜻 힘을 보태주는 형제에게 미안하고, 그동안 바쁘단 핑계로 늘 뒷전이던 날 그래도 친구라고 생각하고 먼저 연락해주던 친구들에게 미안한,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제 대답을 머뭇거리게 하나 봅니다.


어떻게든 잘 살 거라, 우린 싸우지 않고 잘 해낼 거라 자신 넘치게 대답하지만, 막상 현실의 벽이 닥치니 한숨부터 쉬게 됩니다. 사랑으로도 이기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 현실이 너무 무섭고 버거울 때는 옆에서 곤히 잠드는 그 사람의 얼굴을 한참 쳐다봅니다.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고생시킬게. 뻔히 보여 미안하지만, 그래도 잠든 얼굴을 보면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됩니다. 


가끔 결혼준비를 하며 서로의 의견이 안 맞거나, 현실에 치여 작은 말썽이 모여 큰 화를 부를 때도 있고, 피곤하고 귀찮은 마음에 별거 아닌 일에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에게 돌아오는 건 해소가 아닌 미안함이고 자책감입니다. 그런 점들까지 모두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려다 보니 설교 아닌 설교를 하게 됩니다.


"기분 좋다. 근데 무섭다. 결혼하고 자유를 잃고 가장이 되고 책임을 진다는 게 무서운 게 아닌, 내가 정말로 책임지지 못할 때 내 옆 사람이, 내 자식이 힘들어할까 봐 그게 무섭다. 미리 걱정해서 뭐하냐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라 걱정은 된다.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사랑하는 마음은 같을지 몰라도 그 사람이 가진 무게가 다르다. 나이 먹어도 준비 못 한 내가 싫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부모님께 손 안 벌리려 노력하지만 그럴 때마다 미안해하는 부모님 얼굴 보기가 더 죄스럽다. 내가 능력이 있다면 그런 미안함 안 가지게 해드릴 수 있을 텐데란 생각은 하루에 수천 번도 더 한다. 본인 역시 준비되지 못해 미안하다는 집사람의 대답에 난 왜 이리 게으르게 세월을 보냈을까 하는 후회와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은 그런 날 이해해주고, 같이 처음부터 해보자는 집사람의 대답에서 오는 고마움이다. 만약 네가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준비하게 되거든, 평소보다 많이 부딪힐거다. 하지만 절대 너 혼자 참고 이해한다 생각하지 마라. 어쩌면 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이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참고 있을 수도 있다. 현실에 부딪혀 결혼을 포기하고 나 혼자 세월에 맞추어 물 흐르듯 흘러가 잊히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함께 고생하고 노력해서 죽기 직전 우리 그래도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서로 격려하고 토닥거려주는 배우자가 있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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