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니 에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보았습니다. 개봉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보아 정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 내면의 감정을 캐릭터화해, 우리가 겪는 감정충돌적인 모습을 그들의 모습으로 그려냈습니다. 주인공 라일라의 감정들이 겪는 좌충우돌과 슬픔이의 비중은 우리에게 감정을 숨기고 마냥 즐거운 척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란 것을 보여줍니다.




슬픔이와 기쁨이, 그 둘에게서 보이던 나의 모습.


인생의 희로애락이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 있어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이 모두 함께 있다는 소리죠. 마냥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우린 비인간적이라 말합니다. 부처가 아닌 사람이기에 화를 내고, 예수가 아닌 인간이기에 이기적일 수 있으며, 동물이 아닌 사람이기에 함께 기뻐할 수 있죠. 사실 전 직장을 다니며, 그리고 그만둔 후. 혼자서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부담될까봐 늘 괜찮은 척하며 지냈죠. 슈퍼맨이 아닌데 슈퍼맨처럼. 전 직장을 그만둘 때 누군가 저에게 그랬습니다. 

"너도 사람이고 실수할 수 있다. 왜 너만 실수하면 안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널 슈퍼맨으로 만든 거 같아 미안하다."고 말이죠. 저도 사람이고 감정을 느끼는 인간입니다. 매드클라운의 가사처럼 때리면 아프고, 간지럽히면 웃죠. 슬플 땐 웁니다. 하지만 그땐 그 감정들을 모두 숨겼습니다. 강압적으로 기쁜 생각만 하려 하고,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고, 그 뒤 제게 남은 것은 해피바이러스가 아닌, 너무나 큰 공허함이었습니다. 결국, 감정의 골이 깊어질수록 악영향이 나왔고, 결코 좋지 못한 방법으로 전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지금 전 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초반 기쁨이의 행동은 슬픔이를 배제하는, 라일라에게 늘 즐거움만 주려 하는 모습입니다. 슬픔이의 실수로 구슬의 색이 바뀌고, 섬들이 무너지면서 분명 관객들도 슬픔이를 욕했겠지요. 하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슬픈 기억이었고 억지로 즐거운 기억을 만들다 보니, 표출되지 못한 슬픔이 모여 일으킨 사고라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기쁨이와 슬픔이가 없을 때 라일라에게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결국 모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텅 빈 인간이 되어버리죠. 인형이 된 라일라에게 감정을 되찾아준 슬픔이와 기쁨이. 라일라가 제일 먼저 찾은 감정은 슬픔이었습니다. 슬픔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마음껏 울었을 때, 다시 찾아온 것은 기쁨이 아닌 행복이었죠.


감정노동자와 감정을 숨기는 어른들.


우리 모두 어쩌면 몸만 큰 어린이입니다. 현실에 부딪혀 참고, 견디며, 다들 힘들어하니 힘들다는 소리 한번 제대로 못내는, 모든 것은 나의 노력부족으로만 몰고 가는 그런 어린이일 수 있습니다. 어릴 적 꿈은 기억청소부들이 지워버리고, 어릴 적 상상의 친구는 빙봉처럼 이별했죠. 구멍 난 통장에 월급만 들이붓는, 아니, 월급을 붓기 위해 직장을 찾아다니는 많은 몸만 큰 어린이입니다.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괜찮은 척, 긍정적인 척. 힘들다 말하면 약한 사람으로, 화를 내면 부도덕한 사람으로 내모는 그런 사회의 시선이 우리를 슈퍼맨으로 만들고 있는지 모릅니다. 슈퍼맨이 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그 공허함. 우리가 만약 우리의 감정에 솔직해지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 역시 행복일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본 모든 어른에게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잠깐이라도 어린이로 돌아가 보자고, 우리의 감정에 솔직해져 보자고. 그럼 내일은 조금 아주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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